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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중: 「러브 온톨로지」

옆집사람 2019. 11. 13. 23:44
 온톨로지(ontology): 존재론. 존재의 본질과 존재 자체의 의미를 밝히려는 철학의 한 분야.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혹시 모르는 것 혹은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를 기만한다. 실체 없는 말들이 팽배하다. 사랑을 말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우리의 사랑은 이기심, 욕구, 감상, 탐욕, 집착, 질투 등의 혼합물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 인플레이션이다. 모두가 마구잡이로 떠들어댄다.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들어가는 말 p.9)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기를 기피해왔다. 그것은 물론 내게─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나 다루기에 두려운 주제였다. 이 두려움은 난해함과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은 심리적 문제이다. 환각을 벗겨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환각을 먼저 벗겨내야 한다.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속살은 외풍에 맞서야 한다. 이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세월은 그러나 자기 포기를 가르쳐주었고, 다행히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이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 (들어가는 말 p.10)

 

 "사랑이 무엇이지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책. '사랑'에 대한 현대철학적 답변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중세시대에 출간됐었다면 즉시 금서 목록에 올랐을 것이다.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관, 신념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한 설명에 역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형상에서 사랑의 의미를 후퇴시킨다. 여기에 철학적, 심리적, 생물학적 논증을 붙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시를 가져다놓고 그것은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애정일 뿐이라고 한다.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내가 만약 범선이라면


내가 만약 범선이라면,
희고 푸른 돛을 단 크레타의 범선이라면,
로도스의 숲에서 베어져 뗏목으로 흘러온,
향기 나는 삼나무를 쪼개 나무못으로 이어 붙인 돛배라면,
삼나무 사이를 송진으로 메운 돛단배라면,
당신을 싸고도는 솔 향과 나무 향을 내는 꿈 같은 작은 배라면,
나무와 송진이 줄무늬를 만드는 작은 배라면,
당신만 간신히 실을 작은 배라면,
작고 또 작아서 우리 둘이 붙어 있어야 할 그런 배라면,

다정한 소곤거림으로도 갈 수 있겠네.
영원히 갈 수 있겠네.
둘만이 바다 위를 떠돌 수 있겠네.
당신의 숨결만으로,
당신의 한숨만으로,
당신의 환호만으로,
우린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겠네.
우리가 같이 보았던 하얀 절벽의 그 섬,
꿈만 꾸었던 그 섬에 닻을 내릴 수도 있겠네.
거기에 머물 수도 있겠네.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항해하겠네.
닻을 거두고 돛을 부풀리며 곧 떠나겠네.
그래야 당신이 나만의 것이니까.
누구도 무엇도 당신을 빼앗을 수 없도록.
나무도 바위도 산호도 산호 속 물고기도 에메랄드빛의 산호 여울도.
조용한 숨결로 닻을 부풀린 채로,
당신 몰래 바람 타고 대양으로 나가겠네.
내 품만이 당신의 전부인 곳,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나는 조금씩 가겠네.

근심과 고통은 해안에 내려놓고,
노역과 과거도 해안에 내려놓고,
사랑과 기쁨과 미소와 당신을 싣고,
작고 하얀 나는 먼 바다로 나가겠네.
바다는 옅어지다 하늘이 되고 말겠지.
당신은 더 이상 누구의 것도 아니겠지.
단지 내 것 이외에.

당신 눈은 꽉 차겠네,
낮엔 새들로 밤엔 별들로.
나는 별과 당신 눈을 구별도 못하겠네.
도취되어 당신 눈을 바라보겠네.
내 눈엔 당신만이 들어차리.
따가운 적도의 빛이 나를 온통 빛나게 해서,
내가 당신을 눈부시게 한다면,
기쁨으로 내 닻을 부풀리겠네.
그 빛이 나를 황금으로 바꾼다면,
당신에게 그것을 선물할 수 있겠네.

당신이 기뻐한다면 빛이 되어도 좋고 황금이 되어도 좋네.
빛으로 당신을 어루만지고 금으로 당신 품에 머무르니까.
내 눈이 온통 부시다 해도,
당신은 그래도 내 눈을 채우리.

우리가 북쪽 끝에 가고 열기가 사라진다면,
해가 구름과 눈으로 바뀌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겠네.
눈을 안은 바람이 세게 몰아치겠지.
소중한 당신을 앗아가려고.
난 당신을 더욱 깊이 안으리,
선창의 가장 깊은 곳에 당신을 가두리.
무엇도 당신을 가져갈 수 없도록.
언제고 당신은 온전히 내 것.
우린 한없이 작아지겠네.
숙인 나의 어깨 안에 당신이 있겠네.
나를 적신 물이 내 몸을 얼게 해도,
그래도 나는 추워 떨지 않으리,
내게는 당신이 있으니까.
세상의 따스함이 거기에 있으니까.

사랑과 꿈과 당신을 싣고 가리.
가는 듯 가지 않는 듯,
비단 위를 미끄러져서,
시간은 온통 사라지게 하고,
우리의 사랑만 싣고,
나는 그렇게 바다를 헤쳐가겠네.
 
우리는 숨겠네. 우린 사라지리.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리.
당신과 나는 멀리 푸른빛을 내고,
점점 희미해지며 푸른 창공 속으로 사라지리.
하늘과 별이 바다와 함께하는 그 사이로 사라지리.
청금색 별들만이 그것을 보겠네.
하늘색 바다만이 그것을 알겠네.
그러고는 그것들도 우리를 잊겠네.
많은 시간이 흘러 별과 하늘도 바뀔 때,
우리도 우리를 잊겠네.
우리가 살았는지도 모르겠네.
우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사랑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시이다. 나는 사랑에 관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읽은 적 없다. 도대체 무엇이 스스로를 범선으로 만들고 둘만의 세계를 구성해서 어디론가 소멸되게 하는가. 그러나 앞의 내용에 비추자면 이것도 단지 애정에 관한 것이다. 이조차도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사랑인가?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면 "둘만"의 배타적인 것일 수는 없다.(연인 사이의 특별한 감정=배타적≠사랑) 이것 역시 성적 요소를 그 필수적인 일부로 하는 애정에 관한 시이다.(애정, p.179) 

 

 결론이 어떻게 될까. 30페이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