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책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본문
"(···)어떤 생각이 저에게서 살아난다고 느끼듯이, 어떤 사물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사고들은 침묵하는데, 저의 내면에서 뭔가가 살아 있는 것을 느낍니다. 저의 내면에는, 그리고 모든 사고들 아래에는, 제가 사고로 헤아릴 수 없는 어두운 무엇이 있습니다. 낱말들로 표현되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삶인, 하나의 삶이 말입니다···.
이렇게 말 없는 삶이 저를 압박하고, 에워쌌으며, 늘 그것을 응시하도록 저를 내몰았습니다. 저는,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다는 사실이, 그리고 제가 어쩌다 겨우 그것의 조각들만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 괴로웠습니다. 오, 저는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었어요···. 저는 그만 의식이···."
"사고의 수용성과 자발성"─이렇게 수학 선생이 지원을 해주었다. "저 애는 우리들의 모든 체험에서 주관적 요인들에 너무 지나친 관심을 기울였고, 그것이 그를 혼란시켰으며 모호한 비유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베르트 무질의 『세 여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해가 안갔다. 이 책을 읽으니 무엇을 이해해야할지 알 수 있었다. 로베르트 무질이 26세에 쓴 첫 장편인만큼 그의 작품관이 표면에까지 드러나있다.
이 소설은 다소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등장인물도 주인공 퇴를레스와 그의 친구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 바시니 정도이다. 작가가 소설의 주제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설정한 "책략"이라고 한다.(「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지식을만드는지식, p274)
처음에 퇴를레스는 바시니가 저지른 죄에 혐오를 느낀다.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와 의논할 때 그는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려서 바시니를 퇴학시켜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친구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팅과 의견이 부딪치면서 퇴를레스는 "자기가 원래 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말들이 내면의 뒷받침이 없으며 진짜 자신의 의견이 아님을 느"낀다.
어차피 바시니가 퇴학당한다는 결과는 정해져있다. 그전에 그들은 바시니를 자신들의 일에 이용하기로 한다. 라이팅은 바시니를 감독하고 그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고 제안하고 나머지 두 친구가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표면적인 합의이다.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는 학교의 구석에 숨겨진 은신처에서 바시니에게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괴롭힌다. 라이팅은 바시니를 단순히 욕망에 따라 괴롭히고, 바이네베르크는 영혼에 대한 개인적인 연구의 실험에 이용한다. 퇴를레스는 관조하는 듯 보였으나 자신에게도 그러한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퇴를레스의 내면에 큰 사건이 된다.
그에게도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처럼 자신으로부터 나온 근거가 필요했다. 동시에 그는 목적이 불확실한 병렬적인 여러 감정에 혼란과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에는 "두려움과 회의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한다는 확신"을 느끼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한다. 그는 부모님께 받은 편지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얻는다. 아마도 퇴를레스는 혐오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퇴를레스는 바시니가 스스로 자백하도록 설득함으로써 불쾌한 관계들을 모두 끊는데 성공한다. 퇴를레스가 퇴학당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의도했으리라.
이 책은 인간 내면에 대한(특히 성적인 부분에서) 폭로를 담고 있다. 세계에 대한 폭로일지도 모른다. 둘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고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고 아닌 것이 늘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징검다리처럼 영혼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사고를 가능케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내면에 연결된 세계를 언어로 옮긴 작품이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울의 움직이는 성」다시 봤다. (0) | 2020.08.11 |
---|---|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독서중단) (0) | 2019.06.16 |
책 「위대한 개츠비」 (0) | 2019.05.27 |
책 「노르웨이의 숲」 (0) | 2019.05.11 |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0) | 2019.05.06 |